라이프스타일 기반 로컬 크리에이터, 지역 관광공간을 어떻게 바꾸는가: 낭만의 바다, 태동기 (2부)

허욱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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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부에서는 르페브르의 '공간의 삼중성'과 쇼브의 '실천이론'을 결합한 분석 모형을 살펴보았다. 이번 2부에서는 이 렌즈를 적용하여,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양양 해변이 2010~2014년 사이 이주 서퍼들에 의해 어떻게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했는지 그 '태동기'의 공간 역학을 추적해본다.  


1. 정체된 변방 바다에 찾아온 균열

 태동기 이전의 양양 해변은 연중 약 45일 남짓한 여름 피서철에만 반짝 활기를 띠는 정체된 변방의 바다였다. 해안가를 따라 길게 늘어선 군사 경계 철책은 사람들의 접근을 가로막는 거대한 물리적 장벽이었고, 상권은 일반 위락객 대상의 횟집과 민박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관할 지자체의 관광 정책 역시 낙산해수욕장이나 설악산 오색지구 등 전통적 관광 자원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공간 기획과 자본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였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외부에서 유입된 새로운 주체들이 간섭 없이 자율적으로 공간을 전유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다.  


2. 실천 요소의 재배열: '이주 서퍼'는 양양에 무엇을 가져왔는가?

 도시의 경쟁적인 삶에 환멸을 느낀 청년들이 바다로 무대를 옮겨오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이주 서퍼들은 쇼브의 실천이론에서 말하는 실천의 세 가지 요소(물질, 역량, 의미)를 양양 해변에 새롭게 재배열하였다.  


  • 물질(materials)
    : 권리금 등 이권이 없는 깨끗한 바다와 파도, 연세 200만 원 수준의 저렴하고 낡은 빈집, 그리고 정비된 채 방치된 유휴 부지는 서퍼들에게 소자본 정착이라는 최적의 공간적 기회를 제공함

  • 역량(competences)
    : 스노보드 씬에서 체화한 보딩 스킬이 바다의 서핑 스킬로 수평 전이되었음. 자본이 부족했던 서퍼들은 동료들과 품앗이로 낡은 공간을 직접 개조하는 리모델링 스킬을 발휘했으며, 스노보드 국가대표 출신 서퍼가 전지훈련 시절 먹던 수제버거 맛을 재현해 '파머스키친'을 창업한 것처럼 생업을 위한 F&B 요리 스킬을 결합하기도 하였음

  • 의미(meanings)
    : 이들의 내면에는 물질적 성공만을 좇는 획일적인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서' 자연의 파도에 집중하려는 탈물질주의적 지향이 있었음. 또한 바다를 빌려 쓴 대가로 서핑 후 쓰레기 세 개를 줍는 '테이크 쓰리(Take 3)'와 같은 환경 정화 활동을 일상적으로 실천하며, 친환경주의와 '로컬 리스펙트'라는 대안적 의미를 확고히 다짐 


3. 낭만의 바다가 빚어낸 '차이공간'의 발아

 이러한 새로운 실천의 결합은 서퍼들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이들은 출퇴근 시간에 얽매이는 대신, 매일 '파도 차트'를 확인하며 자연의 리듬에 맞춰 노동과 휴식을 유연하게 결정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파도가 없는 날에도 서퍼들은 스케이트보딩, 낚시, 비공식 축제(서핑영상 상영회·풍등 날리기) 등을 통해 해변 공간을 자율적으로 재구성하며 자신들만의 무대로 활용하였다. 지진해일 안내판에 서핑보드를 그려 넣는 시도는 획일적인 행정 공간에 서퍼들의 정체성을 기호적으로 투영한 실천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겨울철 서핑의 감각적 체험과 자생적 문화 활동 등이 누적되면서, 태동기(2010~2014)의 양양 해변은 상업적 소비 논리와 구별되는 대안적 '차이공간(differential space)'의 성격을 갖추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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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차 예고] 대중의 시선과 자본의 유입, 그리고 공간의 추상화

 그러나 낭만으로 가득했던 서퍼들의 '차이공간'은 곧 거대한 변화의 파도에 직면하게 된다. 이들의 이국적인 풍경과 힙한 문화가 미디어를 타면서, 2015년 상업적 기획의 산물인 '서피비치'가 등장하고 이내 대규모 자본과 대중 관광객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다음 3부에서는 대중 관광의 폭발적 팽창 속에서 자생적 하위문화(subculture)의 성지가 어떻게 '양리단길'이라는 동질화된 추상공간(abstract space)으로 변모하게 되는지, 그 역동적인 '반응 및 확산기(2015~2019)'의 이야기를 다루도록 하겠다.


참고문헌:

허욱 (2026). 로컬 크리에이터의 라이프스타일 실천과 지역 관광공간의 변증법적 생산 경로 연구: 양양 해변 이주 서퍼의 서핑 기반 실천 변동을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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